개요
등 뒤에서 쉿 소리가 점점 커진다. 방금 캔 터지는 광물이 가방에 들어갔는데, 가방은 등에 달린 해치라 내가 열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옆 동료에게 “빨리 꺼내줘!!”라고 비는 것뿐이다..
Minor On Air의 세계관을 짜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세계관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규칙에서 먼저 나왔다. 1편에서 정한 건 도망가는 광물, 터지는 광물, 팀킬 같은 규칙이었고, 세계관은 그 뒤에 “왜 광물이 움직이지?”, “왜 가방을 못 열지?”에 이유를 대려고 붙였다.
협동 게임을 기획하면서 규칙과 설정 중 뭘 먼저 잡을지 고민 중이라면, 규칙이 먼저 있고 설정이 하나씩 이유를 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거다. 그 과정을 적어보겠다!
광석은 왜 움직이지?
시작은 규칙 하나였다. 이 게임의 광물은 맞으면 도망가거나 터진다. 그럼 광석이 움직이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내가 쓴 손글씨 메모의 흐름은 이렇다.
- 광석이 움직이는 세계 → 광산이 어떤 생명체의 내부라면? ( 던그리드의 “던전 입구가 거대한 입” 컨셉에서 생명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발상만 가져왔다 )
- 그럼 광석은 그 생명체 안의 기생충이다.
- 연구원들이 생명체를 발견하고 안으로 로봇 광부를 보낸다. 로봇들은 바보 같지만 귀여운 “멍청한 AI들”이다.
- 톤은 R.E.P.O. 느낌.
그리고 메모 맨 아래 두 줄이 이 세계관의 방향이다. 겉은 병맛 협동, 알고 보면 떡밥이 있다. 로봇들의 미션이 이 생명체를 보호하는 건지 파괴하는 건지는 일부러 모호하게 남겨뒀다. 답은 아직 비밀이다.
G.Ore: 고래 모양의 광물 생명체
메모 속 생명체에는 G.Ore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위와 광물이 박힌 고래 실루엣의 항성급 거대 생물이다.

설정이 규칙에 이유를 대는 첫 번째 자리가 입구다. 로봇은 G.Ore의 아가미 틈으로 들어간다. 이 아가미 틈이 광석을 납품하는 곳이자 판 끝에 탈출하는 곳이라, 평소 오가던 길이 그대로 탈출 경로가 된다.
내부에는 인공 구조물이 없다. 생체 조직과 광석이 섞인 자연 동굴이고, 구간을 이렇게 나눠 뒀다.
- 일반 광산, 생체 조직이 드러난 구간
- 아가미 같은 통로
- 광맥 주변 조직, 천장에 매달린 광석
- 막힌 구간: 연쇄 폭발로만 여는 벽
마지막 구간도 규칙이 먼저다. 동굴 벽은 부서지지 않고 레벨에 배치한 특정 벽만 폭발로 부서진다. 지형을 마음대로 파는 건 1차 구현에서 제일 큰 리스크였고, 그래서 지름길은 터지는 광물로만 열리게 했다.
이미지의 “크기 비교”에서 보이듯 광석은 로봇의 1~3배다. 이게 뒤에서 가방 문제를 만든다.
손 없는 6족 로봇
플레이어는 손이 없는 6족 구형 로봇이다.

손이 없으니 도구는 입 소켓에 끼운다. 원래 규칙은 곡괭이로 광물을 치고 두 손으로 큰 광물을 나르는 것이었는데, 캐릭터가 정해지면서 둘 다 바뀌었다.

- 드릴을 끼우면 타격이다. 광물을 캐고, 실수로 동료도 친다.
- 드릴을 떼면 소켓 회전력으로 빨아들이는 진공이 된다. 큰 광물 운반, 쓰러진 동료 끌고 가기, 동료 가방에서 꺼내기를 이 동사 하나가 맡는다( R.E.P.O.의 손 역할 ).
원안에는 혓바닥 부착물도 있었는데 진공으로 대체했다. 운반·꺼내기를 한 동사로 묶을 수 있어서다. 부착물은 나중에 고치거나 늘릴 수 있게 서버가 관리하는 상태로 뒀다.
머리에는 헤드램프가 달린 광부 헬멧을 쓴다. 판 시작 때 각자 미니게임으로 직접 씌우는데, 삐뚤게 씌운 만큼 램프가 정면에서 어긋난다. 엉뚱한 데를 비추며 걸어가는 동료가 웃음이 되게 하려는 장치다. 1인칭이라 너무 어긋나면 억울하니 각도에 상한을 둔다.
등 해치 가방: 내 가방은 내가 못 연다
이 로봇의 수납공간은 등 해치다. 캐릭터 시트의 OPEN STORAGE가 그 모습이다.
가방 규칙이 먼저 있었다.
- 캐는 순간 가방에 자동으로 들어가고, 꺼내는 건 동료만 할 수 있다.
- 동료가 내 가방에 뭔가를 넣을 수도 있다. 몰래 터지는 광물을 넣는 장난도 허용이다.
- 드릴에 맞으면 가방 속 터지는 광물도 한 대 맞은 걸로 친다.
규칙만 있으면 “왜 내 가방을 내가 못 꺼내?”라는 의문이 남는다. 등 해치가 그 답이다. 손 없는 로봇이 자기 등 뒤 해치를 열 방법은 없다. 카메라가 1인칭이라 내 등이 안 보인다는 점도 같은 방향으로 맞물렸다.
이렇게 모이면 개요의 장면이 나온다. 등 뒤의 쉿 소리 하나에 내 가방 속 폭발 광물, 그걸 꺼내줄 수 있는 동료, 그 동료를 실수로 칠 수도 있는 드릴이 다 엮인다.
남은 문제가 크기였다. 광석이 로봇의 1~3배인데 가방은 몸보다 작다. 여기서는 공상과학 설정을 하나 더 붙였다. 캔 광석은 압축되어 가방에 들어가고 무게만 남는다. 가방 제한은 부피가 아니라 무게고, 무거울수록 느려진다. 욕심내서 많이 캘수록 판 끝 탈출 시간에 손해를 보게 된다.
분홍 기생 광물을 버린 이유
설정을 붙이다가 버린 것도 있다.

이 콘셉트에서는 일반 광석과 분홍빛 기생 광물을 외형으로 구분했다. 광석이 기생충이라는 세계관을 눈에 보이게 하는 좋은 방법처럼 보였는데, 규칙 하나와 부딪혔다.
도망가는 광물은 두 종류다.
- 고블린형: 멀리서도 보이고, 발견하면 쫓아가는 추격
- 반전형: 평범한 광물 사이에 섞여 있다가 첫 타격에 움찔하며 킥킥 웃고 도망가는 기습
반전형은 “캐기 전엔 단서가 없다”가 핵심이다. 기생 광물만 분홍색이면 플레이어는 분홍색만 피하면 된다. 그래서 모든 광석이 기생 광물이고 외형은 다 같다고 정리했다. 색과 빛은 재질과 가치만 나타내고, 분홍 조직은 광석이 아니라 G.Ore의 몸(환경)으로 옮겼다.
정체는 외형 대신 첫 타격의 소리로 알린다. 킥킥은 도망가는 광물, 쉿은 터지는 광물이다.
규칙과 설정 짝
여기까지의 짝을 모으면 이렇다.
| 규칙 | 붙인 설정 |
|---|---|
| 광물이 도망가거나 터진다 | 광석은 G.Ore 안의 기생충 |
| 납품·탈출 지점이 하나 | 입구는 G.Ore의 아가미 틈 |
| 지름길은 특정 벽 폭발로만 | 막힌 구간은 연쇄 폭발로 여는 벽 |
| 가방은 동료만 꺼낸다 | 손 없는 로봇의 등 해치 |
| 큰 광석도 가방에 | 압축, 무게만 남음 |
| 운반·꺼내기를 한 동작으로 | 입 소켓의 진공 |
| 반전형은 캐기 전엔 단서 없음 | 모든 광석이 같은 외형의 기생 광물 |
제목: Minor On Air
가제는 Minor On Air다. Miner(광부)와 Minor(비주류)를 겹치고 On Air(방송 중)를 붙였다. 비주류 방송인이 커가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원안은 Minor On Underground였다. 말장난은 살리고 네 단어를 두 단어로 줄였더니 약어 MOU 문제도 같이 사라졌다. Rock Bottom Live 같은 후보도 있었지만 2026년에 나온 스팀 광질 게임과 이름이 겹쳐서 떨어졌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영어권에서 minor는 미성년자로 가장 흔히 읽힌다. 뒤에 나올 자극적인 방송 컨셉과 붙으면 의도와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어서, 로고에서 Miner가 먼저 읽히게 하고 광부 캐릭터가 성인으로 보이게 하는 걸 필수로 정했다.
보류 중: 방송을 키우는 광부들
제목의 On Air는 4차(Jev 시청자)를 위한 자리다. 아직 보류 상태라 확정된 건 아니다.
Jev로 AI 시청자를 넣는다면, 로봇 광부들이 방송 규모를 키우려고 점점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 컨셉으로 갈 생각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설계한 위험 행동에 조회수라는 이유가 생긴다.
- 쉿 소리가 나는데 한 대 더 치기
- 터지는 광맥 옆에서 버티기
- 동료 가방에 몰래 폭발 광물 넣기
- 추격 중 팀킬
판 끝에 사건 기반으로 상을 주는 “욕심 영수증”도 방송 하이라이트가 된다. 조회수가 팀 목표와 어긋나는 순간은 웃음이 되지만 너무 잦으면 협동이 무너지니, 평소엔 팀 할당량을 같이 채우고 이벤트 때만 개인 몫을 나누는 구조를 유지할 생각이다.
아직 정하지 못한 것
- G.Ore가 영어권에서 gore로 읽히는 걸 의도한 말장난으로 둘지
- 고블린형은 “살아 있어서 압축을 거부”하는 예외로 두고 진공으로만 끌고 가게 할지
- 드릴을 떼면 드릴은 어디에 있나? 바닥에 떨어져 남이 주울 수 있게 할지
- 삐뚤어진 헬멧을 판 중간에 고칠 수 있나? ( 동료가 드릴로 쳐서 재조정 같은 병맛 포함 )
- 미션이 G.Ore를 보호하는지 파괴하는지 드러내는 시점과 방식
소감
규칙을 먼저 정해놓고 세계관 구상을 진행하니, 뒷 이야기를 우리끼리 구성하는 느낌이라 뭔가 재밌었다. 게임의 시작은 망상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