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026년 9월 15일, 판단 전용 AI 모델 Jev가 공개됐다.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을 만큼 빠르고 토큰도 적게 든다는 소개를 보고, 이걸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졌고, 이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원과의 기획 과정을 작성해보려 한다.
기획하면서 계속 붙잡고 있던 질문은 하나였다.
이거, Jev 말고 if 분기로도 되지 않나?
이 질문으로 아이디어를 열 개 넘게 버리고 나서야 팀 기획이 살아있는 광물 채굴 멀티 게임으로 정리됐다. 그 과정을 적어보겠다!
Jev는 어떤 모델인가
Jev는 TypeSafe AI가 2026년 9월 15일에 공개한 모델이다. 텍스트를 생성하지 않고, 상태(텍스트나 JSON)와 질문을 보내면 정해진 형태의 판단만 돌려준다.
| 질의 형태 | 하는 일 | 게임 AI로 옮기면 |
|---|---|---|
choice |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 | 행동·상태 전이 선택 |
score |
순서 있는 등급으로 평가한다 | 유틸리티 스코어링, 우선순위 |
noul |
예/아니오일 확률(0~1)을 낸다 | 감지·의심 같은 이진 판단 |
응답마다 확률 분포가 붙어서, 따로 파싱하지 않고 바로 분기 로직에 넣을 수 있다. 느린 LLM이 전략(System 2)을, Jev가 즉각적인 행동 선택(System 1)을 맡는 데모도 공개돼 있다.
오른쪽 열은 내가 기획하면서 대응시켜 본 것이다. 공식 분류가 아니다.
속도·비용 배수는 발표 수치 기준이고, context window는 출처마다 32K/64K로 다르게 적혀 있다. 아직 얼리 액세스 단계라 실제 지연 시간과 비용은 직접 써보기 전까지 모른다.
첫 안: 플레이어를 읽는 Director AI
처음 잡은 안은 플레이어 행동을 읽고 반응하는 Director AI였다. 플레이어가 어디로 자주 피하는지, 어떤 경로를 좋아하는지 보고 몬스터와 미로를 실시간으로 바꾸는 구조다. 이때는 그냥 무난한 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Jev를 찾아볼수록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면 고도화된 if 분기문”이라는 설명이 계속 눈에 걸렸다. 그 틀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는데, 정작 Director AI는 if 분기만 많으면 된다. 회피 횟수, 경로 선호 같은 입력은 열거할 수 있는 값이라 Utility AI나 규칙으로 똑같이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첫 번째 기준이 생겼다. if 분기로 되면 제외.
자연어 규칙 게임: 비용이 줄어드는 건 차별점이 아니다
다음으로 본 건 규칙을 자연어로 만드는 게임(Nomic류)이었다. 플레이어가 규칙을 문장으로 추가하고, 그 규칙에 걸리는지 판정만 Jev에 맡기는 안이다.
입력이 자유 텍스트라 첫 기준은 통과했고, 구조 자체도 신기했다. 하지만 하다 보면 LLM으로 TRPG를 하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불호였고, 무엇보다 이건 일반 LLM으로도 똑같이 된다. Jev를 쓰면 구조적으로 비용만 줄어들 뿐, 플레이어가 느끼는 재미는 같다.
그래서 두 번째 기준을 세웠다. 일반 LLM으로도 성립하면 제외. 필요한 건 “Jev여서 가능한 재미”였다.
신을 키우는 게임에서 대화형 팬게임까지
두 기준을 들고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 룰렛으로 단어를 조합해 스테이지 문장 만들기 (“불이 / 매우 많은 / 감옥”)
- 말 없는 판정자에게 봉헌해 신을 키우기 → 신이 관장하는 도메인마다 기본 서사가 달라지는 구조
- 대화 중심 팬게임
룰렛과 봉헌은 게임이 너무 정적으로 흘러갈 것 같아서 뺐다. 대화 중심 팬게임은 두 번째 기준에서 걸렸다. 1:1로 말을 주고받는 반응은 원래 LLM이 잘하는 영역이고, “AI 미연시는 이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접었다.
성좌: Hades랑 뭐가 다른데?
그다음 가져온 게 웹툰에 나오는 성좌 개념이다.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하면 그걸 지켜보는 신(성좌)들이 관심을 보이고 후원하며, 플레이어는 그 관심도로 성장한다.
이 구조를 잡자마자 걸린 게 Hades였다. 신들이 플레이어에게 힘을 주는 게임이 이미 있으니까.
| Hades | 성좌 안 | |
|---|---|---|
| 누가 고르나 | 플레이어가 메뉴에서 신의 보상을 고른다 | 신(관찰자)이 플레이어 행동을 보고 반응한다 |
| 주도권 | 플레이어 | 관찰자 |
구조로는 다르다. 다만 보상을 고르는 화면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겉보기에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성좌 컨셉은 Jev와 궁합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사건을 여러 성좌가 동시에 보고 각자 반응해야 하니, 1:N 판정이 된다.
성좌를 시청자로
성좌 안은 서브컬처 팬게임 방향을 거쳐 이렇게 바뀌어 갔다.
- 일반 게임 + 선택적 Jev 모드: 기본 게임은 Jev 없이도 돌아가고, Jev 모드를 켜면 성좌가 붙는 구조
- 친구끼리 협동하고, 편애하는 성좌에 시청자가 참여하는 구조
- 마인크래프트 다이아 서버 형식: 후원이 들어오면 캐야 할 다이아 할당량이 늘어나는 구조를 멀티로, 시청자는 Jev 성좌로
시청자를 성좌로 두면 조합이 폭발한다. 시청자마다 성향(페르소나)이 다르고 게임 안 사건도 매번 다르니, 반응을 사람이 손으로 다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언제 Jev여야 하나
여기까지 오면서 남은 조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논의 중에 세운 가설이라 아직 검증하지 않았다.
- 입력이 열거 불가능할 때: 자유 텍스트처럼 경우를 미리 나눌 수 없는 입력.
- 조합 공간이 너무 클 때: 시청자 페르소나 × 게임 사건처럼 사람이 손으로 채울 수 없는 조합.
- 짧은 시간에 판정이 많을 때: 한 사건에 여러 성좌가 동시에 반응하는 1:N 구조.
이후 배경 3D 디자이너가 합류할 수도 있어서 3D도 잠깐 검토했고, 팀 논의 끝에 1차: 살아있는 광물 채굴 / 2차: 시청자 레이어로 정리됐다.
팀 확정안: 살아있는 광물
주제는 광질(채굴) 기반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이며, 표현하기 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를 팀원 양쪽이 똑같이 꺼냈다.
순서도 나눴다. 1차로 광질 게임을 완성한 뒤, 2차로 시청자 요소를 붙인다.
Jev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그렇게 찾아놓고 1차에서 Jev를 빼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다. 내 생각은 이랬다. 1차 프로토타입이 그 자체로 재밌는 요리여야 하고, Jev는 거기에 치는 조미료다. 요리가 맛없으면 조미료를 뭘 쳐도 소용없으니, 이렇게 나누는 게 개발 단계로도 더 효율적이라고 봤다.
1차 프로토타입에 넣을 것은 세 가지다.
- 때리면 다리가 생겨 좌우로 도망가는 광물
- 캐는 도중에 터지는 광물
- 팀킬 가능 → 광물 때문에 생기는 혼돈이 웃음 포인트
레퍼런스는 How to Fish, 마인크래프트, Pratfall이다.
How to Fish는 스웨덴 2인 개발사 Dazed Games가 2026년 8월 20일에 낸 1~4인 온라인 협동 낚시 게임이다. 이틀 만에 100만 장이 팔렸다. 코어 루프는 낚기 → 처치 → 판매 → 장비 업그레이드 → 다음 섬이고, 흥행 이유로는 낮은 진입 장벽, 직관적인 플레이, 방송·영상으로 공유하기 좋은 물리 기반 돌발 상황이 꼽힌다. 팀킬, 희귀 어종 수집, 트릭샷도 있다.
진행은 데스크 리서치 → 추가 논의 → 기획 구체화 → 명세서 작성 → 구현 순서로 간다.
AI는 이렇게 쓰기로 했다
팀에서 합의한 원칙이다.
- 직접 지휘·감독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만 맡긴다.
- 자동화된 AI 오케스트레이션은 피한다. 틀에 박혀 망가지기 쉽다고 봤다.
-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서 디버깅할 수 없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
- 구조는 직접 짜고, 막히는 함수·스크립트 단위로만 AI를 쓴다.
2차에서 다시 꺼낼 설계 원칙
논의 중에 나왔지만 팀에서 확정하지 않은 것들이다. 시청자 레이어를 만들 때 다시 볼 생각이다.
- 밸런스와 연출 분리: 얼마나 괴롭힐지(후원 예산, 클리어 가능성)는 결정론적 코드가, 누구를·언제·무엇으로 괴롭힐지는 AI가 정한다.
- AI는 생성하지 않고 고르기만: 효과·대사·에셋은 사람이 만든 풀에서만 고르게 해서 밸런스와 일관성을 지킨다.
- 코드로 후보 생성 → AI 선택 → 검증: AI가 게임 상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후보를 먼저 코드로 걸러낸다.
- 판정 인터페이스 분리 + fallback: 규칙 기반 판정과 Jev 판정이 같은 출력 형식을 쓰게 해서, 네트워크가 끊기면 규칙 기반으로 바꿔 끼운다.
- 기술 제약을 메커닉으로: 컨텍스트 한도를 “규칙 폐기”, “구전 왜곡” 같은 게임 요소로 바꾸는 아이디어.
아직 정하지 못한 것
- 2차 시청자 레이어의 구체적인 형태 (후원 할당량, Jev 모드 여부)
- 팬게임으로 갈지, 간다면 원작 2차 창작 가이드라인의 AI 조항
- 3D 여부와 카메라 시점
- 멀티 인원수, 광물 종류와 발동 조건
소감
아이디어를 열 개 넘게 버리고 돌아왔지만, 도망가는 광물에 팀킬까지 들어간 광산이라니..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 기대된다!